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맹 90/녹색당 (문단 편집) === 창당 === [[1979년]]에 [[페트라 켈리]] 등의 주도로 정치운동결사체로서 출범하였다. 1979년 [[브레멘]] 주 의회 선거에서 환경운동에 관심을 보인 후보자들이 '브레멘 녹색 후보자 연합'을 결성한 것이 시초이다[* 브레멘은 옛 독일당이 1964년 완전히 몰락하기 전 최후의 거점이기도 했다.]. 선거 결과, 4명이 당선되면서 자신감을 얻어 전국정당으로 확대하게 된다. [[1980년]]에 정식으로 (당시)서독의 연방정당인 녹색당으로 창당하였다. 1980년 총선에선 1.5%를 득표했는데, 당시에 [[CDU/CSU]], [[독일 사회민주당|사회민주당]], [[자유민주당(독일)|자유민주당]]을 제외한 기타 정당의 득표율 합계가 2%를 넘지 않았기에, 1.5% 득표는 기타 정당 득표의 대부분을 차지한 것이 된다. 창당 이래 꾸준히 지방선거에서 의석을 확보하면서 발판을 넓히다가, 1983년 연방하원 총선에서 5.6%를 득표, 창당 4년만에 연방의회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룩했으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제도권에 편입되기 시작했다. 이 과정에서 비타협적인 강경파와 제도권에 순응하여 타협하는 온건파의 대립이 있었으나 결국 [[요슈카 피셔]]를 중심으로 뭉친 온건파가 1991년 전당대회에서 결국 승리[* [[요슈카 피셔]]와 더불어 오늘날의 녹색당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책이자, 이 정보들의 출처는 아래와 같다[[http://yes24.com/Product/Goods/1803991|#]]. 제목은 '신화를 쓰는 마라토너 요슈카 피셔'.], 오늘날의 녹색당이 있게 되었다. [[1985년]]에는 [[헤센]]주에서 [[독일 사회민주당]]과, 세계 최초로 '적녹연정'을 이루며 처음으로 정부운영([[요슈카 피셔]] [[환경부]][[장관]])을 해보았으며, 이후 [[1987년]]에는 전년에 있던 [[체르노빌 원전 사고]]의 여파로 득표율이 더욱 더 높아져서 8.3%를 기록했다. 이 당시 녹색당이 보여준 주요한 특성 중 하나가 바로 당의 좌경화인데 제도권 정당으로 진출하면서 환경문제에 대한 입장 자체는 온건해졌지만, 경제문제에 대한 좌파적 입장(반 자본주의 노선)은 오히려 강경해졌다. 녹색당 구성원 중 상당수가 [[좌파]]에 가까운 인물들이었고, 이들과 우호적인 좌파집단들이 당세가 커진 녹색당에 가세한 데다가 더구나 주 연정상대인 [[독일 사회민주당|사민당]]과 보조까지 맞추는 과정에서 경제적 입장이 급격히 좌경화되었다. 이 당시 녹색당을 비꼬는 별명 중에 녹색 외투를 입은 마르크스주의자라거나 [[토마토]](처음에는 초록색이지만 익으면 빨개지니까) 같은 것이 있을 정도.[* 국내에도 번역되어 소개된 '상식의 오류 사전'이란 책에서는 당시 녹색당 지도부와 지지층들이 오히려 자동차도 많이 타고 다니고, 에너지를 더 많이 사용하며 지구에 해를 끼치는 소비 패턴을 보인다면서 녹색당의 표리부동함(…)을 호되게 까버렸다. 저자인 발터 크래머 교수는 한때 사민당원이었던 좌파 경제학자.] 다만 이것도 꽤 된 얘기고 지금은 전세계 녹색당들 중에서 가장 온건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